http://www.gapasan.com/ 에 소개된 김수연양의 이야기 입니다.
몇해 전 글인데... 허락없이 옮겨봅니다. emoticon_01



가난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자식과 함께 생명을 끊고, 달리던 자동차가 무방비상태의 관중을 덮치고, 노동자가 연달아 분신하고, 이유없이 길가는 행인을 퍽치기하고 죽이고.... 하도 놀라운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웬만한 사건엔 잘 놀라지도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요즘 우리나라 신문을 보면 겁이 많이 납니다. 5년간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서 차분한 지역에 머물다보니 그렇게 된건지, 나이를 먹어 겁이 많아진건지 헷갈리긴 하지만 신문을 읽어내릴때마다 '우리나라가 과연 이래도 되나'싶을 만큼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지금부터 제딴엔 놀라운 얘기를 하나 꺼내려고 하는데, 이글을 읽는 분들이 대부분 우리나라의 대형사건에 워낙 적응을 해서 과연 놀랄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와 저희가족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중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한명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거의 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와 매일 만나고 어떤날은 점심 저녁을 같이 먹는 날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겁니다. '음악에 대해 일자무식인 가파산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와 어울릴리가 없다'거나 '가파산하고 노는 순간 그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아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뽕짝을 제외하고 제가 음악에 대해 아는체 한다는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임을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기억하라! 이 가파산이 무려 3년간 군대에서 클라리넷을 만졌단 사실을. 나도 음악인이라 이거야!

그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김수연.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만15살입니다. 15살에 바이올린을 잘 하는 아이들은 우리나라에도 흔하디 흔하기 때문에, 문외한이 소개하는 것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이 아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하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 www.suyoenkim.com에 모인 글들을 살펴보시거나 케이비에스 일요스페셜의 홈페이지인 www.kbs.co.kr/special/vod.shtml에서 '천재는 이렇게 자란다-김수연의 음악일기'편을 먼저 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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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분들은 생각 나실겁니다. 위의 방송은 지난 3월에 방송되었고 그보다 먼저 지난 1월의 방송과 신문엔 이 어린 소녀의 첫 고국방문연주가 성황리에 진행되었음이 인터뷰와 함께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지 이 홈에 소개하지 않아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충분히 유명한 사람이고 수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클라식음악계의 '스타'입니다.

6살에 부모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처음시작하고, 겨우 1년뒤에 작은 도시의 음악대회에서 만점을 받아 두각을 나타내더니 9살때 음악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얻은 아이, 겨우 열살의 나이에 독일내의 큰 콩쿨은 다 휩쓸고 다니고, 유럽의 내놓라하는 오케스트라와 한무대에서서 솔로연주를 해내던 아이, 김수연에 대한 지금의 우리나라 언론의 반응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수연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성장환경이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세계적이라는 이 작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실은 바이올린을 연습할 공간도 없는 작은 집에서 두동생과 부대끼며 자라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아빠가 그녀가 자랑스럽게도 세상에 김수연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져, 그녀는 일약 '역경을 딛고 세계정상을 향해 달리는 의지의 한국인'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모든것은 사실입니다. 그녀가 거실겸 부모의 침실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녀가 연습할때 어린 두동생은 밖에 나가놀거나 방해가 되지 않게 방에 들어앉아 있는것도 사실이고, 그녀의 가정이 유학생이던 아빠의 힘든 노동으로 유지되었던것도, 그리고 뇌출혈로 쓰러진 아빠가 거동이 불편한것도 사실입니다. 바이올린을 하는 수연이만 돌봐도 벅찰 그녀의 엄마는 친인척도 없는 독일땅에서 세딸을 챙기고 남편의 병간호와 살림까지 해내느라 몸이 아파도 누울 시간이 없는 사람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음악대학에 보내기 위해 한달에도 수백만원의 과외비를 들여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면 그녀의 이야기는 놀라운 일이요, 기적이라 할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놀라야 할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두 동생까지도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또 한가지는 거동과 대화가 불편한 그녀의 아버지는 병상에 누웠어도 아내와 하루에도 몇차례씩 전화로 사랑을 속삭인다는 사실입니다. 한가지 더 하자면 15살의 나이에 그녀는 하루 5시간도 좋고 8시간도 좋고 오로지 바이올린을 연습한다는 겁니다.

9살에 대학의 입학자격을 얻을 만큼 김수연은 영재였습니다. 아이들에겐 저렴하게 음악교육을 받게 하고, 체형에 맞는 바이올린을 빌려주기까지하는 독일의 음악교육제도는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에 혼을 넣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건, 모르긴 몰라도 그녀가 가진 환경이고 가족이었을 것이며 그녀의 노력이었을겁니다.

이제 김수연은 독일이 주목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유럽의 음악계가 손짓하는 스타이고 한국에도 알려진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원로라는 강원룡목사가 그녀의 후원회장이고 도서출판 한길사가 그녀를 후원하고 있고 몇개의 음반사와 방송이 늘 그녀를 찾는것만 보아도 그녀에게 더이상 '어려운 환경'이라는 말은 필요할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은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언론이 김수연의 음악세계보다는 주로 그녀의 어려운 환경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김수연을 통해 우리나라의 음악계는 크게 성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우리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지극히 원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돈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있는 가족환경이 아이의 성장엔 가장 중요하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교육제도가 재능있는 아이를 지속적으로 길러낸다' '노력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재능이다'.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돈을 받고, 교수가 되기위해 돈이 오가고, 실력보다는 스타 시스템으로 부풀리고, 그 와중에 수백만원이나들여야 겨우 아이에게 음악교육을 시킬수 있다면 우리사회에서 음악은 무엇때문에 배우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연은 바로 그 창피하고 천박한 문화에 던지는 粲完?비웃음이기 때문에 놀랍습니다.  

지금 김수연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빠는 그녀가 사는 곳에서 차로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요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40대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진 그에게 이번은 4번째 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고싶다'던 그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어 지켜보는 저까지도 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벌써 4년째 수연이 가족과 저희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연이와 두 동생들은 시간이 나면 가온이를 친동생대하듯 돌봐주는 사입니다. 저와 가온이는 영광스럽게도 남들은 돈주고도 못듣는 연주자의 음악을, 곁에서 '지겨워 몸비틀며' 들을 수 있는 처지가 된 셈입니다. 가깝게 지내다보니 저희는 종종 수연이 가족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상황을 잊곤 하지만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라서 기대 또한 큰것이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속에 녹아있을 이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그리고 김수연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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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장의 사진을 '가깝다는 증거물'로 제시합니다. 한장은 며칠전 뮌스터 음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윤이상의 음악 '새'를 연주하는 수연이를 담은 사진입니다. 다른 한장은 병상에서 결혼기념일을 맞은 수연의 아빠 김동욱전도사께서 휠체어에 앉아 장미와 함께 아내에게 보낼 카드를 힘들게 써내리는 모습입니다. 부디 쾌유를 빕니다.


김수연양의 공식홈페이지 http://www.suyoenkim.com/

중앙일보기사 2006.10.16 하노버 국제콩쿠르 우승한 김수연양 바이올린 빌려 연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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