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이야기 [옮김] 악기의 역사와 음향학

2007.05.10 12:24

midiolin 조회 수:3474

http://blog.naver.com/betty5454/20005956336***
나름대로 정리가 잘 된 글인데 계속 '펌'되면서 몇개의 글이 만난 듯 싶네요.
그중에 악기에 대한 부분만 옮겨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깁니다.

탁월한 배음, 화려함과 섬세함
  

<바이올린, 악기의 역사와 종류>

  물리적인 음향 법칙으로 보거나 형태적인 완전성으로 보거나
바이올린만큼 완벽한 악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곡선
하나에도 음향 원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길이와 두께, 휘어진
각도까지도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이 이와 같은 원리와 모습을 갖게 된 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악기 앞면에 있는 f자
울림구멍이 프란츠(Frantz)를 암시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의 황제 프랑시스 1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바이올린의 발명자로 지목한 일이 있으나 이 역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무수히 많았던 비올 제작자들 중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졌던 몇몇 사람들이 여러 가지의 시도를 통해 바이올린의 토대를
만들고, 어느 한 명인의 손에 의해 체계화되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다.

   대부분의 바이올린 명기들이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3세기 초까지는 이탈리아인들은
활을 사용하는 악기를 알고 있지도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류트나
기타를 만들었고 이 방면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은
13세기를 보내면서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활을 사용하는 악기의
제작방법을 배웠고, 이 방법이 그들의 기술과 만나게 되어 훌륭한 비올
작품들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가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돌연
바이올린이 볼로냐 화가의 그림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줄리오 노마노가 1550년에 그린 그림이나 페레그리노
티발디의 그림 ‘성 세실리아와 바이올린을 켜는 두 천사’ 속에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이것을 근거로 최초의 바이올린은 16세기의
30년대나 40년대의 볼로냐에서 태어났다고 추측된다.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었던 모든 현악기를
바이올린의 전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어떤 악기들은
점진적으로 바이올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령 페르시아의 케멘체나 아라비아의 르바브, 무어인들의 레벡,
켈트인들의 크루트, 독일의 트룸샤이트, 프랑스의 비엘 등이 그 예이다.


   한편 바이올린을 포함한 현악기의 계통을 그리스의 기타라에서 찾는
견해도 있는데, 손으로 퉁겨 연주하던 기타라가 중세 전기에 이르러
손으로 퉁기기도 하고 활로 문지르기도 하는 로타로 발전하고, 이
로타가 12∼13세기의 비엘로 발전하며 비엘이 15세기를 거치며 비올이
된다는 것이다. 비올은 바이올린처럼 허리가 잘룩한 모양을 갖게 되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 비올족의 악기들은 바이올린이 탄생한
이후에도 한동안 공존했으며 17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비올이 바이올린과 다른 점은 현의 수가 6개이며, 무릎 위나 무릎
사이에 끼우고 연주한다는 점이다. 비올에서 바이올린이 나오는 중간
과정에 리라 다 브라치오라는 악기가 나타나 무릎 위에서 연주하던
방식을 어깨에 올리고 연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맡는다.
비올과 리라와의 차이는 비올의 울림구멍은 C자인 데 반해 리라 다
브라치오의 울림구멍은 f자라는 점이다.

   16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정착한
바이올린은 그 이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와 브레시아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유명한 제작자로는 안드레아 아마티와
그의 손자 니콜라우스 아마티, 니콜라우스의 제자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가문의 안드레아와 안토니오 델 제수, 그리고
루제리, 베르곤치, 몬타냐나, 스토리오니 등이 있으며 그란치노와
과다니니는 밀라노에서, 갈리아노는 베네치아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가 그 가문 특유의 악기 몸통 모양을 창출한
이후 그것이 표준형으로 고정되어 1700년대부터는 바이올린의 몸통이
35.5cm로 커졌다. 당시의 유명한 제작자들은 목의 후면 경사를 높이고
굵은 현을 강하게 조여 사용했으며, 브리지를 높게 올리고 지판의
길이를 늘렸다. 이렇게 하여 보다 풍부한 음량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음향적인 면에서도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제작된
악기들은 따라갈 수 없는 이상적인 악기로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한편 바이올린의 활도 상당 기간을 통해 오늘의 모습으로 정착한다.
최초의 활은 화살을 쏘는 활의 모습과 같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활의 탄력이 턱없이 부족하며 충분한 길이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16세기 초에 활털과 막대 사이에 간격을 두어 잡기
좋게 만든 활이 나왔고, 17세기 초에는 활대의 구부러진 정도가 훨씬
적어졌다.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금속 고리를 걸어 활털 이음틀을 움직여서
활털의 장력을 바꿀 수 있는 장치가 고안되었다. 18세기 초에는 나사로
움직이는 활털 이음틀의 원리가 고안되었으며 활대의 각도도 더욱
줄어들었다. 18세기 중엽 타르티니의 영향으로 활대가 직선으로
정착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활을 만들었던 투르트는 바이올린에서
스트라디바리가 이룬 업적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활 제작 부문에서
남겼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활이 상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골동품 활을 수집하는 상인이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유독
프랑스에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16세기 중반에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
  
   바이올린을 구성하는 부품의 수는 대략 70개 정도가 된다. 가장 큰
부품이라 할 수 있는 앞판과 뒤판은 가운데가 불룩하게 나오고 몸통의
위 아래와 가운데 부분이 바깥쪽과 안쪽으로 둥글게 곡선이 졌는데, 이
모양은 나무를 휘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그렇게 깎은 것이다. 나뭇결에
따라 공명도가 다르기 때문에 좋은 공명을 얻기 위해 앞판은 세로로,
뒤판은 가로로 자른 널판지를 잘 건조시켜 쓴다. 앞판과 옆판은
소나무나 전나무, 뒤판은 단풍나무를 주로 쓴다. 현의 진동이 브리지를
타고 앞판에 도달하여 공명하면 앞판, 옆판, 뒤판으로 만든 빈 공간이
공명통의 구실을 하여 음을 증폭시킨다.

   공명통 속에 있는 버팀목은 버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앞판과
뒤판의 진동을 전달하여 몸통 전체가 공명하게 해주는 역할도 맡는다.
앞판의 좌우에 있는 f자 울림구멍은 몸통의 공명에 의한 공기 진동을
밖으로 통하게 한다.

   바이올린의 음향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는 버팀목의 위치,
  브리지의 모양과 위치, 등이다. 브리지는 단풍나무로 만드는데,
중앙에 하트 모양의 구멍을 뚫어 두 개의 날개를 만들고, 아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어 현의 장력을 견디어 균형을 이루며 현의 진동을
앞판에 전달한다. 하트 모양의 양날개는 음색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바이올린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칠은 음색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며,
습기 등의 기후로부터 악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보통 여러 겹의
칠을 하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신비스러운 음색의 비밀이
바로 이 칠에 있다는 설도 있다.

   바이올린의 활은 가볍고 강하며 탄력이 있을수록 상품으로 친다.
문지르는 줄은 말총을 사용하는데, 보통 활 하나에 150∼250개의
말총이 들어간다. 이 말총에 송진을 발라 연주할 때 활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다. 바이올린의 줄은 양이나 어린 양의 내장으로 만든
거트현이나 강선을 쓴다. 거트현은 음질이 부드럽고 음색이 아름답지만
온도변화에 약하고 음량이 적으며, 강선은 음량은 크지만 음질이
떨어진다. 그때문에 보통 높은 음인 E선은 강선을 사용하고 나머지
3개의 현은 거트 또는 강선에 가느다란 동이나 은 또는 알루미늄을
감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어린이를 위해 여러 가지의 축소형 바이올린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풀 사이즈 바이올린의 몸통의 길이를 35,6cm로 쳤을 때 1/4은 29.7cm,
1/2은 32cm, 3/4은 33.5cm가 된다. 어린이들이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는 축소형을 쓰지만 곧 풀 사이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축소형
바이올린으로는 명기를 만들기를 꺼리게 되고, 따라서 축소형 중에는
이름있는 올드 바이올린이 매우 드물다.




<바이올린의 악기음향학>


바이올린은 활로써 현을 마찰시켜 생긴 진동을 브리지를 거쳐 복잡한
구조를 갖는 몸체를 통해 증폭시켜 소리로 방출하는 현악기이다.

활에 의한 바이올린 현의 진동은 브리지를 주기적으로 상하 또는
좌우로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여 우선 몸체의 앞판을 진동시킨다.
앞판의 진동은 앞·뒤판을 연결시켜주는 음주(sound post)의 도움으로
뒤판까지 전달되어 앞·뒤판의 진동이 몸체의 주된 진동을 이룬다.
물론 앞·뒤판의 진동 이외에도 브리지, 음주, 지판, 줄감개 등도 어떤
특정 주파수에서 공진을 하거나 상호작용을 일으켜 몸체 진동에 영향을
준다.

바이올린의 음향학적 특성은 무향실에서 측정한 바이올린의 주파수
특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바이올린의 주파수 특성은 수많은 공진점에 의해 매우 복잡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굴곡이 심한 주파수 특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바이올린이 실제로 연주될 때 모든 음이 잘 들리는
이유는 연주시에는 기본 음뿐만 아니라 배음 성분들도 발생하기 때문에
기본 음이 약한 경우에는 배음들중 일부가 강하게 발생되어 전체적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데 있다. 또한 이런 복잡한 주파수 특성
때문에 바이올린은 악기마다 같은 음에 대해서도 음색이 다르고, 한
악기에서도 각각의 음마다 배음 성분이 달라져서 변화 있는 음색을
나타내게 된다.

바이올린의 주파수 특성은 마치 인간의 지문처럼 모두 서로 다르고
각기 고유의 음향학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바이올린의 주파수
특성의 판독은 전문성을 요한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와 같은
유명한 이탈리아 고악기들은 낮은 주파수부터 올라가면 270Hz, 470Hz,
560Hz 부근에서 반드시 뚜렷한 공진 특성이 생기는 반면, 공장제품
바이올린의 경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또한 좋은 바이올린의 경우
1,000z∼4,000Hz 사이의 주파수 특성은 스펙트럼의 포락선이 하나의 둥근
큰 산 모양을 하고 그 안에 마치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우리처럼 수많은
공진점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좋지 않은 바이올린의 경우 포락선이
쌍봉낙타처럼 봉우리가 두 개이거나 변형이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바이올린에서 존재하는 1,000z∼4,000Hz 사이의 큰 공진점들은
아름답고 찬란한 음색과 멀리까지 잘 들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19세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이탈리아 고악기를 복제하기
위해 똑같은 두께와 굴곡을 갖도록 제작하는 외형적인 복사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그 음향특성까지 똑같게 되었다는
예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아무리 같은 종류의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나무는 그 밀도, 탄성 등이 매우 차이가 나므로 똑같이
복제했다 하더라도 특정 모드에서 그 고유 진동수가 달라진다. 그러나
제작 도중에 앞판과 뒤판의 공진 주파수를 체크해가며 완성할 경우에
오리지널 악기와 거의 같은 음색을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한 경우가
있었다.

한편 아교와 칠도 바이올린 음질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이제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과거에 맹신적으로 믿었던 것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나쁜 칠은 좋은 악기를 망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칠이라도 나쁜 악기를 좋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은 몇 년 전 국제 음악음향학학회에서 필자와 독일 미테발트
바이올린 제작학교 교장이 똑같이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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